병원에선 이상 없다는데몸이 계속 아프다면
검사에서 이상이 없다고 해서 통증이 가짜인 것은 아닙니다. 상담에서는 통증의 원인을 마음으로 옮기기보다, 그 아픔이 지금 하루 안에서 어떤 자리에 앉아 있는지를 함께 봅니다.
여러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모두 정상이고,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며 상담을 권유받는 경우가 있습니다. 그 말이 위로보다 억울하게 들리기도 합니다. 아픈 척한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.
이런 자리에서 듣는 대답은 대개 둘입니다. "검사에 안 나오면 없는 것"이라는 차가운 대답과 "마음의 병이 몸으로 나온 것"이라는 다정한 대답. 두 번째가 나아 보이지만, 둘 다 지금의 통증을 다른 무엇의 그림자로 만든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. 원인만 찾아내면 낫는다는 생각은 아픔 위에 '아직 못 푼 숙제'를 하나 더 얹기도 합니다.
그래서 저는 "왜 아픈가" 대신 "이 아픔이 지금 하루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"를 묻습니다. 통증이 유독 심해지는 시간대나 장면이 있다면,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고 무엇을 하지 않게 되는지를 함께 봅니다. 통증에도 시간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.
1970년대 연구자들은 감정에 붙일 말이 없는 상태를 관찰하고 감정표현불능증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. 그들이 본 사람들은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, 몸의 감각은 아주 자세히 말하면서 그것을 '무섭다', '서운하다'고 부르지 못했습니다. 이름이 붙지 않은 것은 이름 없는 채로 그 자리에 남습니다.
물론 검사에 잡히지 않는 병은 실제로 많고, 모든 통증을 마음 탓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. 병원 진료는 그대로 이어 가시는 것이 맞습니다. 상담이 할 수 있는 정직한 일은 통증을 없애 주는 것이 아니라, 아픔이 앉아 있는 자리를 함께 보는 것입니다. 이유 없이 견디는 아픔과, 그것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면서 견디는 아픔은 같지 않습니다.